내가 유치원생일 때 부모님께서는 부업으로 임대사업을 하고 있었다. 우리집 건물 1개에 아마 우리 집을 포함 해 4개 가구가 살았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. 2층에 2가구, 1층에 2가구. 그 중 우리집은 1층에 위치해 있었고 나머지 1층에 위치한 방 1개는 특이하게도 4인가족이 사용하고 있었다. 그들 중 1명은 나보다 몇 살 나이가 많은 오빠였는데, 종종 나와 놀아주기도 하고 사탕을 달라고 하면 사탕도 주고,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하면 (매우 얄미웠지만) 쮸쮸바의 꽁다리를 주기도 했었다.
그러던 어느 날이었다. 그 날은 엄마도, 아빠도 없는 날이었고 나와 내 동생이 집에 있었다. 그 오빠는 무언가 긴장되고 조심스러운 말투로 나에게 제안을 했다. 시키는 대로 하면 내가 좋아하는 샤니 패스츄리 빵 (하얀색 설탕물이 발라져 있는 둥근 빵)을 주겠다고 했다. 난 빵을 먹을 생각에 들떠서 뭔 진 모르지만 일단 하겠다고 했다. 그 오빠는 나에게 신신당부를 하며 그 일이 끝난 이후에는 반드시 양치질을 하고 빵을 먹으라고 했다. 그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는 너무 늦은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되었다.
그 오빠는 나를 아무도 없는 방으로 데려갔고 불을 아마 껐었던 것 같다. 아마도 내 동생도 옆에 누워있었던 것 같고 나도 몇 미터를 띄고 옆에 누워 있도록 시켰다. 그리고 입을 벌리라고 하고 내 얼굴 위로 마치 변기 위에 쪼그리고 앉듯이 앉았다. 그리고 내 입을 벌리라고 하고는 넣어져서는 안 되었을 흐물텅한, 아무 맛이 나지 않는 무언가를 넣었다. 그 때 까지도 난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라서 그냥 (엥…?) 하는 심정으로 가만히 있었다. 그 오빠는 살짝 당황하며 혀라도 좀 움직여보라고 했다. 그래서 아마 그것도 그대로 했던 것 같다. 의문의 세션이 다 끝나고 나서 대망의 샤니 패스츄리 빵이 제공되었고 난 얼씨구나 하며 먹었다. 다 먹었을 때쯤 오빠가 나에게 물어봤다. 양치질은 했냐며. 난 당연히 양치질을 왜 해야 하는지, 귀찮았기에 그냥 바로 빵을 먹었고 아니, 안했는데 라고 답했다. 그러자 마치 무언가 큰일 난 것 처럼 철렁 한 표정을 짓는 오빠의 얼굴이 보였다.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.
그 이후로 나는 그 일이 그렇게 대수롭게 생각 되지 않았다. 대한민국에 사는 여자라면 누구나 이런 일 한 번 쯤은, 아니면 그보다 더 심각한 일 쯤은 당할 수 있지 않나 하며 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 까지 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. 그러다 무언가 내 안에서 아무리 그래도 이건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. 나한테 누가 이런 일을 한 것은 아무 느낌이 들지 않는데, 만약 나중에 내 딸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난 그의 목을 딸 것이다. 하지만 왜? 어째서 나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긴것에 대해서는 정작 아무 느낌이 없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건 아마도 내가 그 사건을 제대로 직면 할 용기조차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. 결국 2003년 경에는 엄마에게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. 엄마는 그제서야 그 오빠가 왜 수면제를 먹고 자살시도를 했고 우리집을 떠났는지 알겠다고 했다. 그 이야기는 그 때 처음 알게 되었다. 그래. 자살기도를 했구나. 꼴에 죄책감은 있었구나.
그 사실을 엄마에게 처음으로 알린 이후에는 내 사고에 새로운 양상이 나타났다. 그 일이 일어났던 것은 내가 멍청했기 때문이야. 그래. 내가 얼마나 멍청했으면 아무리 6살 짜리 아이여도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하겠다고 하겠니. 그러니 이건 내가 잘못한거고 내가 무가치한거야. 나 같은 것, 참 무가치한 존재로구나.
그러다가 내가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종종 심리상담을 학생보건소에서 받곤 했었는데 거기에서 처음으로 직접적으로 “어린이는 성적 행위에 동의 할 능력이 없다. 어린이의 성적 행위에 대한 동의는 원천적으로 무효하다.” (https://www.innocentlivesfoundation.org/children-and-consent-what-you-need-to-know/) 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어 그제서야 내가 멍청한게 아녔다는 것을 전문가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다. 그 때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되어 충격이었고, 정말로 아무리 6살이었어도 동의 할 능력이 없는 것이 맞냐며 여러 번 물어봤었다. 전문가는 몇 번이고 그렇다고 답해주었다. 지금도 그 말은 나에게 있어 큰 구원으로 다가온다.
지금은 40대가 가까워진 이제서야 그 사건에 대해 제대로 직면하게 될 용기가 생겼다. 난 이제 그 사건을 떠올리며 더 이상 아무렇지 않아 하진 않게 되었다. 이제서야 제대로 슬퍼 할 준비가 된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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